함께 있는 내내 혼자만 외딴섬에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섞이지 못할 기름 같았던 건 아니다. 종종 즐거웠다. 대화에 아예 끼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나를 제외한 세 명이 이미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대화의 흐름은 당연하게도 그들의 일상이 되었다. 나에게 일상이 없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겠지. 나는 꽤 오래 일상이 없는 삶을 살고 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도 전해줄 이야기가 없으니...
요즘 뭐해? 나는 그 질문이 왜 이렇게 부끄럽고 싫은지 모르겠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되도록 내게 근황을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나빴던 것도 아니다. 일부러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니고, 내가 소외감을 느끼게 하려고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런 영악한 사람들도 아니고... 그냥, 이 모든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일상 얘기를 한 거다. 거의 한 해를 함께 일을 해온 사람들이라 할 얘기도 많았던 거고. 내가 이해를 못 하는 상황엔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일상에 일원이 아니기 때문에 공감을 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왔다.
예전엔 그런 상황에서 억지로 고개라도 끄덕였을 것이다. 상대에게 내가 듣고 있음을 어필하기 위해 고개를 너무 많이 끄덕이느라 어지러웠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조차도 피로해졌다. 아니 피로해진 건지, 이젠 그 정도 거짓 리액션은 안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진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래도 그 친구들이 편해서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 건지.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친구들이 방금 벗어난 회사 얘기를 할 때 나는 알아서 밥을 먹었다.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때까지는 그 점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 또한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뭐 궁금하겠는가. 그런데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러 갔을 땐 좀 뻘쭘했다. 내가 대화에 끼지 못하는 순간이 길어지자 이 시간까지 왜 여기 앉아있나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술집에서는 빔 프로젝터로 애니메이션 영상을 틀어줬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그 시간을 견디기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내내 그 영상을 봤다. 정말 내내. 내 옆에 앉은 친구도 그 영상을 봤다. 그렇지만 분명 나와는 다른 마음으로 봤을 것이다. 좋아했다. 재밌다고 말했다. 회사 사람 욕을 하다가 영상에 집중하고, 내가 모르는 사람 얘기를 너무 오래 하게 되면 나에게 그 사람에 대해 설명을 해주다가 다시 영상을 보고. 나는 아직도 내가 왜 그 모임에 나갔는지 모르겠다.
원랜 세 명이었다. 나를 포함해 세명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대학 친구들이고 나는 셋이서 만나는 게 편하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새로운 지인이 생겼다. 그들의 친구를 소개받았다. 좋은 친구지만 아직 친하진 않다. 그렇게 넷이 만나게 됐다. 공통분모가 없는 새로운 친구와 나는 과정 없이 친해져야만 하는 거 같다.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된다. 친하지 않은데, 과정이 없었는데, 왜 만나야 하는 걸까. 분명 그도 좋은 사람이지만, 나는 오랜 시간 일상이 없던 사람으로서 마음을 여는 게, 이런 나를 보여주는 게 쉽지 않다.
모임의 인원에 세명에서 네 명이 됐다. 자연스럽게 이젠 그게 당연한 게 됐다. 그 자연스러운 변화 속에서 불편한 건 나뿐이다. 나는, 외롭다.